밤에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고해커스 어드미션 포스팅을 본다. 토플 관련 사이트인 고해커스에 있는 게시판인데, 주로 미국대학 합격기(혹은 낙방기)를 올리는 곳이다. 서로 스펙 공유도 하고 여러가지 조언도 하는 곳인데 보다 보면 살짝 중독되는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얘기도 많이 하고 또 감정을 잔뜩 실어서 글을 올리기 때문에...일반 게시판보다 드라마가 있다.

 어쨌거나 이 게시판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여기 노트를 남겨둔다. 어드미션 포스팅을 계속 보고 있으면 심히 기분이 나쁘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공부에 있어서 내용은 사라지고, 점점 경력과 졸업하고 받을 수 있는 돈만 머리 속에 가득차게 된다. 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깡끄리 잊게 된다고 할까?

 사실 이 게시판이 줄 수 있는 정보는 뻔하다. 미국 대학 입시에 대하여 상식 수준에서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일반 원칙들. 1) 영어 중요하다 2) SOP 잘 맞아야 한다 3) 경력 좋아야 한다...사실 이 정도는 정보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기업에 취직하려고 해도 영어 잘하고 경력이 있어야하며 그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여야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보니 "내 스펙으로 삼성에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타이틀로 취업 모의고사 같은 것을 보는 회사도 생겼던데, 대학원 진학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동춘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화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뭐 이건 약간 일반적이고 재미없는 지적이고, 오히려 고등학교화하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시험성적으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 소수의 1등을 위해서 다수가 육체적 불편함을 참는 사회, 모의고사가 일상화된 사회,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사회...두발 단속은 더 이상 안 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 '내용'이란게 아직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어드미션 포스팅은 보지 않겠다. 자기가 속물임을 자각하고 그걸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물들끼리 머리 맞대고 주구장창 속물적인 이야기만 하는 걸 듣고 있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이야기와 글도 음식과 같은 것이라 고매한 것들을 많이 취해야 한다.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딘다
  나이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
  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 현대식 교량(김수영)

 기계처럼 중지시킨다는 말이 느낌이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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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J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언론사 시험 준비하며 '아랑카페' 들락거릴 때의 자괴감도 꼭 이랬다.

    고매한 거 먹게되면 불러라.. 같이 섭취하게

    2007/09/02 21:31
  2. 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라르메 읽으까

    2007/09/02 10:36
  3. anthrop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철씨를 형제로 만들라고?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2007/09/02 13:32
  4. 진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속물 중에 한사람ㅋㅋ 물론 난 올리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이거 다 쓸 때 없는 짓 맞어!
    공부가 아니라 숫자만이 남는다는 자괴감이 너무 많이 들더라.
    그곳에 있으면, 공부하러 유학가는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 없어짐.
    생각 잘했다.

    난 생활정보 게시판이나 열라 열심히 보고있는데..(이건 유용!)

    2007/09/03 03:44
  5. 준석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하지만 끊임없는 등수놀이를 계속하다보면
    그리고 학계의 돌아가는 것들, 교수-대학원생간의 관계 등을 보다보면
    솔직히 "내용"이란 게 있는건지...........특히나 법대에서 배출되는
    학위논문들의 질을 보고 있자면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오죠.

    2007/09/07 14:56
  6. 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갈수록 컨설팅펌들이 학계가 해야할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있을지 모르고, 조금만 지나면 사회복지제도나 법도 맥킨지에 컨설팅을 받을지도 모르죠. 돈이 좀 있으면 생각있는 연구자들을 모아서 정말 괜찮은 싱크탱크를 하나 만들고 싶은데.

    2007/09/07 15:16
  7. 지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작년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처음엔 GRE게시판, 다음은 토플게시판, 다음은 어드미션포스팅 다음은 출국정보관련, 자동차 정보관련...
    포스팅은 글쎄 사회학과만 딱 검색하고 다른 건 별로 관심없어서 말이여...
    근데 아무튼 전반적으로 스누라이프나 해커스 류의 사이트는 좋은 정보도 있지만 대략 너무 보기에 짜증나고 찌질한 것이 많아서 전자도 예전에 아이디 삭제했고, 후자는 대략 올 봄까지만 드나들고 발을 딱 끊었지~

    2007/09/08 22:41
  8. 지나가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해커스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게된 포스팅인데 밑줄긋게하는 표현들이 많네요.
    저도 사교육으로 자라난 세대라 해커스 구린줄 알면서도 자꾸 기대게되는...
    잘 보고 갑니다.

    2009/04/22 13:47
  9. 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드미션 받고 등록까지 했는데도 중독되서 계속 보고 있습니다...-_-;; 호기 있게 글 쓴게 후회되네요. 어쨌든 소위 말하는 "스펙"에 집착하는 태도들이 스펙이 목적으로 하는 내용(여기서는 공부가 되겠군요)과 관계가 없어져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웠었습니다.

    2009/04/2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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