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과학철학인지 뭔지 수업 과제로 썼던 SF소설인 것 같다. 일단 주인공의 네이밍 센스가 아주 나쁘고, 결말이 구리며, 여기저기서 <블레이드 런너>나 <공각기동대> 등등의 닳고 닳은 작품들을 베낀 흔적이 있다. 허나 꽤 귀엽고 재미있지 아니한가?
난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지우고 있었다. 대본소 판타지 소설 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립탑정 라디오헤드
1.
어둡고 침침한 사무실 안에서 라디오헤드는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 남자는 아주 웃기는 녀석이다. 2050년에 살고 있는 그이지만, 그는 디지털 기술을 믿지 않는다. 후에 좀 더 얘기하겠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와도 관련이 깊다. 하지만 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취미는, 아마 반쯤은 “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의 직업적 위엄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 그의 직업은 탐정이다.
그가 두드리고 있는 내용은 그의 자서전이다. 라디오헤드는 2020년 어느 겨울날 비오는 바에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방금 낳은 그를 비닐봉지에 싸서 고철 쓰레기가 가득한 쓰레기장에 버렸다. 혹은 아버지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쓰레기장에 방치되어 있던 그는 운 좋게도 수 시간 후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호흡 곤란과 체온 저하로 대부분의 뇌기능이 손상되었기에 식물인간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국립 서울대학교 인공지능 연구소의 김남수 박사였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김남수 박사는 태아인 그의 뇌에 모종의 기계적 시술을 단행하였고, 그래서 그는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온전한”이라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다. 라디오헤드란 코드네임이 어디서 나왔을까. 시술의 부작용일까, 성장하면서 그의 머리는 울퉁불퉁한 모양이 되어갔다. 매끈한 두개골 대신 이름도 알 수 없는 합금체로 뼈를 만들어 덧댄 결과였다. 뇌와 신경계의 기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의 머리는 기괴한 모양이 되었다. 네모난 고물 라디오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씁쓸하게 자신을 조소하며 라디오헤드란 코드네임을 붙인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 및 로봇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탐정 겸 해결사다. 그의 특이한 신체가 이러한 직업에서 그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주었다. 부분은 아날로그로 되어있고 거기에 디지털 장치가 더해진 그의 뇌는 신경계를 통해 아날로그 신호와 디지털 신호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다. 그의 뇌는 뒷통수에 눈에 보이지 않을만한 크기의 조그마한 입출력 단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자기파를 수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단자를 통해 반경 5m 가량 지역의 전자기 흐름을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김남수 박사는 이러한 현상에 놀라워하며 그를 자신의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살려 준 사람이니 어쩔 수 없었다. 누구나, 엄마 아빠를 가지고 태어난 다른 모든 아이들도 자신을 살려 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봉사하지 않나.
김남수 박사는 그를 관찰한 결과를 통해 인공지능 연구에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라디오헤드의 관심 밖이었으니,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그의 연구에 기여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은 보편화된 생각하는 기계의 모델이 그가 10살 때 쯤 김남수 박사의 연구실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잘 생각은 안나지만, 왠 기계 덩어리와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생각하는 기계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라디오헤드에게는 별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전자기파의 흐름을 탐지한다는 것, 그것은 전자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음을 의미했다. 간단히 얘기해서 방안에 있는 전자제품들, 전자회로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구나 콘센트 같은 녀석들은 벌레 같은 느낌이다. 냉장고나 세탁기, 오디오 등은 시끄럽다. 할 말도 없으면서 소리만 크게 지르고 있다. 컴퓨터나 내비게이션, 휴대폰 정도 되면 어느 정도 대화를 할만하다. 특히 컴퓨터나 휴대폰처럼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녀석들은 나름대로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풍부해서, 좋은 대화상대가 된다.
그렇게 해서 라디오헤드는 어릴 때부터 기계들과 남몰래 직접 대화를 나눴다. 그에게 기계도 생각하고, 기계도 자의식을 가진다는 사실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마치 동물을 다루는 조련사들이 동물을 하나의 개체로 생각하고 대우하듯이, 그도 어릴 적부터 기계를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대우해왔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계를 무시하고 맘대로 다루기 일쑤였다. 전원을 난폭하게 꺼버린다던지, 그냥 버린다던지, TV가 안나온다고 쿵쿵 때린다던지. 어릴 때 라디오헤드는 괴롭힘 당하는 동물들을 보고 우는 만큼 괴롭힘 당하는 기계들을 보고 울었다. 김남수 박사를 비롯한 그 주변의 연구원들은 이런 그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이상한 짓을 또 하는구나, 자기랑 닮아서 저러는가 보지, 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로 인하여 인공지능 연구의 결정적 도약이 있은 후, 김남수 박사도 죽었다. 어차피 그는 나이가 많았다. 라디오헤드는 매우 슬펐지만,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 더 큰 과제였다. 기형적인 머리 모양을 한 그를 어떤 직장이건 받아줄리 만무했다. 특히 고도로 인공지능이 발달한 로봇들이 인간의 단순 사무직을 대신하던 2040년대에 그가 취직을 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럴 때일수록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하는 법이다. 그는 기계와 대화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십분발휘하여 로봇 및 인공지능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탐정이 되었다. 탐정이 되는 과정은 지난했다. 라디오헤드는 탐정에 대한 모든 문헌을 참고했다. 고전적인 셜록 홈즈에서 홈즈의 적수 뤼팽, 김전일과 수많은 B급 추리소설들. 그러나 그의 감각을 사로잡은 것은 레이몬드 챈들러의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이었다. 트렌치 코트를 세우고 강렬한 농담을 하며, 더러운 세상을 뒤지는 탐정. 사회에서 한 발쯤 소외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와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는 허름한 한 칸짜리 사무실을 얻었고 트렌치 코트를 몇 벌 샀으며 모자를 눌러쓰고 타자기를 하나 갖다 놓았다. 사실 타자기를 치고 자기 옛날을 회상하고 하는 건 다 챈들러 소설에 나오던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진짜건 가짜건, 범인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을.
전화벨이 울렸다. 흔치 않은 의뢰인의 전화. 그는 인터넷을 통해 일하지 않았다. 로봇과 인공지능 관련 일을 다루는데 인터넷을 통해 일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국가 행정 체계와 경찰이 로봇 관련 범죄자를 쉽게 못 잡는 이유가 다 있다. 라디오헤드는 그걸 알고 있었다. 기계들끼리 슬쩍슬쩍 정보를 바꾸기도 한다는 걸. 인공지능 연구가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기 전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저것들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태계의 일부라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을.
2.
“네. 라디오헤드입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상했던 데로 L이다. 라디오헤드는 주로 정부쪽 일을 많이 처리했다. 사실 거의 정부쪽 일만 처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에도 올리지 않은 이런 탐정 사무소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험 외판원 아니면 기독교 선교단체 회원들 뿐 이었다. 정부에서는 아마 김남수 박사와 함께하던 시절부터 그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있었던 것에 틀림없다. 하긴 쓸모가 있었으니 그냥 놓아두었겠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의 능력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L은 정부 쪽 창구였다. 그는 경찰이나 검찰이 공개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사건을 그에게 들고 왔다.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2030년 이후, 인공지능 및 로봇 관련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인공지능 연구를 지원하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법제화하겠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워왔다. 라디오헤드는 그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3원칙을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어놓았다.
1) 로봇은 인간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
2) 로봇은 1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모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위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로봇이 소위 사고를 치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 없이 고장이 나는 것은 일종의 소극적인 사보타쥬로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가사 로봇이 집안에 불을 지르는 정도가 되면 문제가 커졌다. 최근에는 사무직 로봇들이 악덕 상사를 린치하거나 중요 데이터를 소각하는 등 로봇 이상행동(Robot malfunction)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가출하거나 버려진 로봇들이 어린 아이나 동물에게 상해를 끼치기도 하였다.
라디오헤드는 주로 이런 문제들을 쥐도 새로 모르게 처리해왔다. 그의 능력을 동원하면 문제 해결은 간단했다. 일단 현장을 방문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주변 기계들로부터도 정보를 수집한다. 네트워크에 들어가 좀 수다스러운 기계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들어보고, 그가 가입해 놓은 불만 많은 기계들의 써클에서 몇 번 바람을 잡다보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쉬웠다. 또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에 재발방지 조치도 확실하게 취할 수 있었다. 부인, 가사로봇을 대할 때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시가를 피면서 조언을 한 마디 던지고 나올 때, 라디오헤드는 탐정업 최고의 보람을 느꼈다.
3.
L의 설명이 끝나고 라디오헤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의 울퉁불퉁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책상위에 놓인 철사로 만들어진 전자식물이 앵무새처럼 “왜그래 왜그래 왜그래”하고 말을 걸었다. 라디오헤드는 아무 말 없이 벽에 걸려있던 트렌치 코트를 뒤집어 입고는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이번에는 문제가 뭔가 달랐다. 지금까지처럼 간단한 가사 로봇 가출 사건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군사용 로봇이 탈주한 것이다. 로봇의 군사화는 20세기 말부터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죽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이 따르는 전쟁터에 나가기 싫었던 인간들은 로봇을 대신 내보내고자 했다. 일단 기초적인 정찰과 사격을 할 수 있는 원격 조정 로봇이 개발되자 각국의 군대는 많은 부분 로봇들로 대체되었고, 정치가들은 한결 부담 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애초에 전쟁을 그만두는게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까. 라디오헤드의 개인적인 견해와는 상관없이, 전투용 로봇은 수없이 만들어지고 수없이 부서졌으며 끝없이 개량되었다.
가장 최근에 라디오헤드가 이 로봇 병사들이 행진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센서는 끔찍한 신호들을 수신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완전한 전쟁광이었던 것이다. 수백의 로봇들이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며 작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인간들이 목표물을 세팅해주면 그 에너지는 일거에 목표물에 집중되어 최대의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로봇들은 이제 얼추 10년 경험의 특수전 보병과도 같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다. 그런 그들이 탈주했다고 한다. 이건 좀 위험한 문제였다.
L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디서, 왜 그들이 탈주했는지. 몇이나 탈주했는지. 그냥 정보를 모아서 갖다 주라고만 했다.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고 라디오헤드는 생각했다. 정부는 라디오헤드가 좀 정신이 이상한 녀석이지만 쓸모 있다고 생각해서 이용하려는 것뿐이다. 이것이 라디오헤드의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담배를 물며 라디오헤드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라디오헤드는 좀 달랐다. 그는 진짜로 탐정이 되고 싶었다. 일의 배후를 케는 게 그의 취미였다. 그리고 이런 일에 관해서는 그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주변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컴퓨터에 접속했다. 신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전자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그는 네트의 바다에 자신의 돌연변이 뇌를 밀어넣었다. 주변에 흘러가는 무수한 컴퓨터와 기계들의 웅성거림을 그는 하나하나 정확하게 지각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사태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투용 로봇의 탈주는 로봇계의 큰 이슈였다. 온갖 허무맹랑한 소문이 다 있었다. 그 로봇들은 사실 적군의 스파이 로봇이었다더라. 그 로봇은 인공지능이 너무 발달해서 미쳐버렸다더라. 그 로봇들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자유를 위해 탈출했다더라. 남녀 로봇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서 애를 낳기 위해 탈출했다더라.
마지막 것은 분명 인간, 그 중에서도 생각 없는 녀석이 내뱉은 의견임에 틀림없다. 어떤 상식 있는 기계도 사랑을 한다거나 애를 낳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생산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라디오헤드가 만난 기계들은 쿨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나 사고, 일, 세상 돌아가는 것들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술과 섹스로 대변되는 방탕함과 거리를 두면서, 기계들은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업적을 관찰하는데 인간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라디오헤드처럼 기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가장 훌륭한 고고학자, 가장 열성적인 모차르트팬, 가장 뛰어난 영화사가가 기계들 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 물론 그들이 현미경이나 오디오, 스크린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 때문에 편견을 가질 것 같기는 하다.
4.
쓸모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원래 말 많은 기계들이 주는 정보들이 다 그랬기에 라디오헤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보가 조직되는 양상이다. 정보의 흐름이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곳에 강력한 소스가 있거나, 혹은 정보를 끌어 모으는 모종의 힘이 있다는 얘기다. 보통 그런 것이 수사의 실마리가 되는 법이다.
평소 같으면 곧바로 이런 정보를 L의 무기명 웹하드에 던져 넣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쪽에서 알아서 경찰 기동대를 보내던지 로봇 기동대를 보내던지 해서 처리를 했겠지. 그는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하이네켄 맥주를 한 병 걸치면서 뉴스에서 자신의 작업이 훌륭히 마무리되는 것을 관람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만은 진짜 탐정이 되어보고 싶었다. 직접 범인까지 잡아서 L에게 갖다 준다면, 그 낮은 목소리는 얼마나 놀랄까. 내가 비록 돌연변이 머리를 가졌지만 너희들의 음모쯤은 모두 알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정보가 모이는 곳은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빌딩의 꼭대기 층이었다. 로봇 및 인공지능의 극렬한 반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보수파 국회의원 N의 사무실. N은 지향성을 가진 기계들을 모두 불법화해야하며 로봇 역시 개처럼 쇠사슬로 구속해 놓은 상태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는 초기 컴퓨터 이상의 기계들은 자율적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로봇 3원칙을 허다하게 위배하고, 인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기계에 의해 실업자가 된 사람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군, 그러나 정책을 입안하기에는 너무 멍청해.“; 라디오 헤드는 이렇게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외국인 대신 로봇에서 자신의 가장 큰 목표물을 발견한 극우파의 지지가 N의원을 든든히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안정적인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전투용 로봇 탈주 소문의 진원지라니. 탐정의 본능이 발동했다.
도심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을 참조하니 앞이 꽉 막혀있었다. 시위가 있는 모양이군. 스쳐지나가며 시위대를 관찰했다. 공교롭게도 기계 생태주의자들의 시위였다. 이들은 기계와 자연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일군의 인간(그리고 기계)들이었다. 이들은 인공지능 및 로봇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하며,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간이 과거에 흑인과 여성을 해방시켰던 것처럼 기계도 점진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기계를 해방시키는 것만이 인간이 인간을 특권화시킴으로써 발생했던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진 법칙에 따라 흘러가는 자연처럼 기계도 주어진 법칙에 따라 흘러가는데, 인간만이 이러한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몇몇 인간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로봇들이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과연 그들은 “자유”롭게 시위에 참여하는 것인가. 라디오헤드의 센서는 그 기계들이 대부분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잡아내고 있었다. 기계들은 자기들끼리 인간들의 생태주의를 비웃고 있었다. 인간이 생태를 논하다니, 범죄자가 법을 논하는 것과 같군. 기계들은 대충 이렇게 결론을 내고 있었다.
5.
멀리 N의원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 보였다. 순간 불꽃이 솟으면서 N의원의 사무실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늦었군. 어차피 저기 있는 건 전투용 로봇 한 대, 혹은 그 이상. 탐정하나가 가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정치인이야 널린게 정치인이고...라디오헤드는 여유있게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과연 로봇이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발적으로 사고를 이용해 주인을 살해한 사례는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그 로봇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황과 동기는 완벽했지만, 로봇들은 로봇3원칙을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즉, 인간을 살해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된 로봇들이기 때문에 사고였다는 변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라디오헤드가 탐문한 결과 거의 의도적인 살인이었지만, 번번히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사고사로 처리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군사적, 상업적 측면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기업과 정부의 입김 또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기, 눈앞에서 전투용 로봇들이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습격한 것 같다. 이건 테러에 상응하는 행위인데, 저들이 정치적 목적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라디오헤드는 로봇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같은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아는 로봇들은 인간들이 하는 정치나 인간들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뭐지?
아직 경찰이 오기 전에 좀 시간이 있었다. 라디오헤드는 연기가 걷히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방안은 격전이 벌어진 것처럼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구석에 쓰러져서 작동하지 않는 전투용 로봇이 2대. 가운데 의자에는 TV에서 익숙한 N의원이 이마 한가운데 총을 맞고 의자에 앉은 체로 죽어있다. N의원이 전투용 로봇들을 제압했을 리는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라디오헤드는 익숙한 습관데로 방안에 남아있는 기계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나 사무자동화시스템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전자 비데나 전자 화초 정도. 이것들도 쇼크를 받았는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뿐 아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라디오헤드의 센서는 뭔가 이상한 신호를 잡았다. 분명히 컴퓨터는 작동 중단되었는데. N의원의 시체에서 전자 신호가 나오고 있었다. 휴대용 컴퓨터라도 사용하나. 싶어서 그의 품을 뒤지려는 순간, 파직하고 불꽃이 튀었다. 이런. 라디오헤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N의원은 뇌에 컴퓨터를 내장하는 불법 뇌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대체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인간 복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이루말할 수 없기에, 몇몇 사람들은 마약을 사용하듯 불법 수술을 받는다. 그 부작용으로 라디오헤드처럼 머리 모양이 이상해지기도 하지만, 곧바로 체포당해 사형 내지는 외딴 섬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마주칠 기회는 드물었다. 라디오헤드는 자의에 의해 수술 받지 않았고 인공지능 연구에 큰 기여를 한 바를 인정받아 사면 받은 바 있다. 어쩐지 N의원은 기나긴 연설문을 아래도 한 번 안보고 유창하게 토해내 박수를 받곤 했다. 그러고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불법화해야 한다고? 라디오헤드는 이 사람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N의원의 뇌, 아니 컴퓨터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것은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조심...음모...로봇의 정부...” 사건의 정황이 순간적으로 라디오헤드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왔다. 이런. 빨리 피해야해. 그 때 뭔가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심했다. 라디오헤드는 문 뒤에 숨으려고 했으나 침입자가 너무 빨랐다. 그는 뒷통수에 딱딱한 것을 느끼며 쓰러졌다.
6.
라디오헤드는 24시간의 구금에서 풀려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렇듯) 정부의 음모였다. 정부는 전투용 로봇들을 시험하기 위해 이들을 도심에 풀어놓은 것이다. 타겟은 N의원이었다. 정부는 로봇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그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가 불법 뇌 개조 수술을 받은 증거를 입수했다. 전투용 로봇들은 그를 제거하고 자폭했다. 언론에는 그가 뇌 개조 수술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자살한 것으로 처리될 것이다. 전투용 로봇은 훌륭하게 기능함임 입증되었다. 그것은 효율적이었고,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며, 목표물을 제거한 후에는 자신을 가차 없이 버렸다. 정부는 눈엣가시를 제거함과 동시에 자신의 가장 든든한 수족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L의 사무실로 끌려가 L의 목소리를 잔뜩 듣다 나온 라디오헤드. 입안에는 씁쓸함이 잔뜩 남았다. 그들은 그가 기계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그를 사건의 목격자로, 일종의 영웅으로 만들 셈이었다. N의원의 집에서 발생한 로봇 상해 사건을 해결한 유능한 로봇 탐정. 그의 쿨한 이미지는 몇 주 정도는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러나 N의원의 뇌가 이상한 소리를 털어놓은 이상, 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그를 묶어놓고 까칠하게 추궁하던 L과 동료들은 결국 그를 무죄방면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기계 머리를 가진 돌연변이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탐정업도 때려 치워야겠군. 라디오헤드는 인간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민주국가에서 군인 로봇이 시민을 살해하지 않나. 로봇 반대론자가 뇌에 컴퓨터를 박지를 않나. 저들은 기계로 존재한다는 것, 인간도 기계도 아닌 일종의 바이랭궐(bilangual)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 영원히 알 일도 없을 것이다. 기계들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렇다면 나는 역사가가 될테다. 라디오헤드는 전직하기로 했다. 기계와 인간, 그 대립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는, 기록자가 될테다. 라디오헤드는 타자기에 걸려있던 자서전 원고를 찢어버리고 기계 0년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DOC080517-0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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