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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7 지하철에서 들은 말 (1)
  2. 2007/10/19 웃긴다 나름
  3. 2007/09/07 영국사진2 (8)
  4. 2007/09/01 고해커스 보지 않겠다 (9)
  5. 2007/08/29 런던 (2)
  6. 2007/08/26 아날로그 소년.
  7. 2007/08/24 해마다 이맘때면 (1)
  8. 2007/08/07 런던콜링(4) 영국의 음악, 미술 (9)
  9. 2007/08/04 런던콜링(쉬어가는 코너) (1)
  10. 2007/07/28 런던콜링(3) : 영국의 지적 분위기

맞은 편에 있는 왠 아저씨가 중앙일보를 보다가 옆에 있는 아줌마에게 말하다.

"난 이명박이가 은행을 털었다고 해도 찍을거야."

아저씨는 아저씨들이 많이 입는 기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어 바지가 종아리 중간까지 올라가 있었다. 보기 흉했다.

웃긴다 나름

분류없음 2007/10/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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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질서가 다 들어있네...(딴지일보 기사 일부)

영국사진2

분류없음 2007/09/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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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브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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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에서 템즈 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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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END에 있는 BT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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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학을 단박에 포기시킨 파이. 이런 의식에 상을 주는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어요.


 밤에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고해커스 어드미션 포스팅을 본다. 토플 관련 사이트인 고해커스에 있는 게시판인데, 주로 미국대학 합격기(혹은 낙방기)를 올리는 곳이다. 서로 스펙 공유도 하고 여러가지 조언도 하는 곳인데 보다 보면 살짝 중독되는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얘기도 많이 하고 또 감정을 잔뜩 실어서 글을 올리기 때문에...일반 게시판보다 드라마가 있다.

 어쨌거나 이 게시판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여기 노트를 남겨둔다. 어드미션 포스팅을 계속 보고 있으면 심히 기분이 나쁘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공부에 있어서 내용은 사라지고, 점점 경력과 졸업하고 받을 수 있는 돈만 머리 속에 가득차게 된다. 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깡끄리 잊게 된다고 할까?

 사실 이 게시판이 줄 수 있는 정보는 뻔하다. 미국 대학 입시에 대하여 상식 수준에서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일반 원칙들. 1) 영어 중요하다 2) SOP 잘 맞아야 한다 3) 경력 좋아야 한다...사실 이 정도는 정보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기업에 취직하려고 해도 영어 잘하고 경력이 있어야하며 그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여야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보니 "내 스펙으로 삼성에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타이틀로 취업 모의고사 같은 것을 보는 회사도 생겼던데, 대학원 진학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동춘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화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뭐 이건 약간 일반적이고 재미없는 지적이고, 오히려 고등학교화하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시험성적으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 소수의 1등을 위해서 다수가 육체적 불편함을 참는 사회, 모의고사가 일상화된 사회,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사회...두발 단속은 더 이상 안 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 '내용'이란게 아직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어드미션 포스팅은 보지 않겠다. 자기가 속물임을 자각하고 그걸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물들끼리 머리 맞대고 주구장창 속물적인 이야기만 하는 걸 듣고 있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이야기와 글도 음식과 같은 것이라 고매한 것들을 많이 취해야 한다.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딘다
  나이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
  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 현대식 교량(김수영)

 기계처럼 중지시킨다는 말이 느낌이 좋군.

런던

분류없음 2007/08/29 00:17

원체 사진찍기를 싫어하지만

운 좋게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다닌다.

런던에서 다시 만난, 고향친구 Shinly가 찍어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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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 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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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파크, Lovebox 페스티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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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슈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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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스를 미끼로 잡은 슈진이




 새로운 재능을 만나는 것은 즐겁다. 아날로그 소년 - 청춘2007.
오랜만에 CD를 한 장 사볼까...



먼저가신 말리형이 생각난다. 이 곡은 기타를 좀 치다 말았는데, 기타보다 노래가 참 어렵더라.

Old pirates yes they rob I

Sold I to the merchant ships

Minutes after they took I from the

Bottom less pit

But my hand was made strong

By the hand of the almighty

We forward in this generation triumphantly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redemption songs

 

Emancipate yourselves from mental slavery

None but ourselves can free our minds

Have no fear for atomic energy

Cause none of them can stop the time

How long shall they kill our prophets

While we stand aside and look

Some say it's just a part of it

We've got to fulfill the book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It's all I ever had,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s

 

Ooh~ Redemption Song


슬프지 아니한가.
 

  지금까지는 너무 진지한 얘기를 많이 쓴 것 같다. 비슷한 직업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재미없는 얘기였을 것 같다. 이제 좀 더 재미있는 취미의 영역으로 가서, 런던에 가서 보고 들은 음악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미술 얘기는 정확히 말하면 미술 얘기가 아니라 박물관 얘기다. 덧붙여서 마지막에는 해리포터 마지막 권 감상까지.


 런던 음악 씬을 보면 20대의 절반은 밴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젊은이들이 음악을 하기 위해서 런던으로 몰려든다. 대부분 식당이나 펍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밴드를 하고, 시간을 내서 학교에 다니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나라 홍대처럼 클럽이 한 군데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클럽이 여기저기 있다. 장르도 굉장히 다양화되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브릿팝 같은 밴드음악에서, 힙합, 레게, 방갈라(인도음악+하우스), 재즈, 월드뮤직 등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세계 4위 규모의 음악산업, 세계 1위의 수출 실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레게 같은 경우는 본 고장인 자메이카보다 영국에서 훨씬 생산이나 소비가 활발하다.


 이렇게 음악 씬이 활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취향의 축적”이다. 대중음악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1950년대 이후부터,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활발하게 음악을 들어왔다. 부모님 세대들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를 들었고, 그 다음 세대는 클래쉬나 블론디를 듣고, 그 다음 세대는 듀란 듀란을, 90년대 세대는 블러와 오아시스를, 신세대는 아틱 몽키스와 프란츠 페르디난드를 듣는 식으로 계속해서 취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LP와 CD를 모으고 자신의 취향을 축적하는 것은 젊은 음악 매니아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하는 일이다. 책을 수집하는 일이 지식인 층위 취미라면 LP를 쌓아두고 손님들에게 자랑하는 것은 계층을 초월한 영국 사람들의 보편적 취미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비평의 칼날도 굉장히 날카롭다. 대중적 취향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소위 만들어진 가수들이 활약하기 힘든 편이다. 만들어진 경우에도 분명한 실력이 있거나 마케팅 전략이 엄청나게 훌륭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Girl Power"를 외치며 페미니즘에 편승한 스파이스 걸스는 후자의 경우이다. 로비 윌리엄스는 전자에 가깝고.) 아무리 뛰어난 스타라도 앨범이 별로 좋지 않으면 신문 지상에서 적나라한 빈정거림을 당한다.


 어쨌거나 주말마다 서는 시장에 나오는 무수한 LP판을 뒤적거리고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BBC에서 해주는 글래스톤배리 실황을 보며 BBC 라디오에서 나오는 레게와 UK 힙합을 듣는 일은 즐거웠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호사 취미라고나 할까. 2층 버스에 앉아서 런던 시내를 달리면서 콜드플레이나 블록 파티를 들으며 ‘이 음악은 이 느낌을 표현한 거구나-’하며 멍해지기도 하고.


 가자마자 가장 처음 본 라이브는 LA의 라틴-힙합 밴드인 오조말리(Ozomalli)의 공연이었다. 재즈 카페라는 조그마한 바 같은 곳에서 하는 공연인데, 수요일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을 걸 예상하고 갔다. 그런데 웬걸, 상당히 마이너한 밴드인데도 공연장이 가득차서 비좁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라이브를 정말 잘하기로 소문난 밴드였더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회춘해서 랩퍼를 기용한 것 같은 밴드인데, 관객들과 즐겁게 노는 걸 가장 중요시하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무대 매너도 좋고, 뜨거운 열정도 있고. 마지막에는 악기를 다 들고 내려와서 공연장 안을 휘젓고 다니면서 기차놀이를 했다. 드럼 키트 분해해서 나눠주고 다 같이 두들기고 하는 식으로.


 그 다음에 간 것은 런던 시에서 주최하는 무료 축제인 라이즈(RISE) 페스티벌.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Rock Against Racism을 시에서 계승해서 매년 개최하는 행사이다. 넓은 풀밭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듣고, 술을 많이 마시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먹었다. 그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음악은 뒷전에 두고 음식만 계속 먹었다. 자메이카 음식은 저크 치킨(Jerk Chicken)을 먹었는데 아주 괜찮았다. 연기가 풀풀 나는 바비큐 숱에 구운 치킨을 춤추며 일하는 흑인 아저씨가 작두 같은 걸로 쩡쩡 썰어서 옥수수랑 같이 내주는데, 매운 소스에 비벼 먹으면 아주 맛이 좋다. 밥 먹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이 제풀에 흥이나서 놀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무대가 있어도 시선이 무대로 많이 집중되지는 않는다. 어디든지 음악을 틀어놓고 거기서 알아서 술 마시고 일어나서 춤을 춘다. 무료 페스티벌이라서 그런지 다른 공연보다도 흑인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10대들이 무리로 온 경우가 많았는데, 애들이 아주 흥겹게 잘 놀아서 기분이 좋았다.


 중간 중간에 노동당에서 온 사람들이 팜플렛을 열성적으로 나눠주고 곳곳에서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인종주의에 반대한다는 가치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시 행사로 이 정도 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반바지를 입은 머리가 희끗한 당 활동가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젊은 아이들에게 생태주의나 반(反)인종주의, 노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들에게서는 힘들고 고된 활동가의 모습이 느껴지는 대신, 오랜 세월 활동에서 얻어진 자신감, 온화함, 즐거움과 흥 같은 것이 보였다. 어떤 사명감이나 정치성이 아닌, 자신의 취향으로서 운동을 한다는, 어떻게 보면 나이브하다고 할 수 있는 접근이,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해보였다. 조직을 만들고 권력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으로 순수한 이념이 부패해가는 과정이다. 다만 조직이 이런 사람들의 열정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일시적으로나마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부패의 위험성, 굴욕을 무릎 쓰고 그 일을 시작해야하는 것 아닐까? (재미있게도, 영국은 급진 전위 조직이 거의 발을 붙이지 못하는 특이한 국가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들이 여기서는 사회주의 노동자 당(SWP)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다는 거. SWP 컨퍼런스에서 느낀건데 예전에 몇몇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캘리니코스, 하먼 등은 급진적이지 않았다. 당과 비폭력/합법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이라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간 페스티벌은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러브 박스 페스티벌. 그루브 아르마다(Groove Armada)라고 클럽 사장이자 디제이인 듀오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재미로 조직한 페스티벌이 5년차를 맞게 되었다. 다른 페스티벌보다는 조금 더 일렉트로닉 음악을 강조하지만, 공연도 충분히 즐길만하다. 올해는 온갖 놀이기구와 서커스를 불러와서 아예 난장판을 차렸다. 게다가 비는 엄청나게 내리고. 비가 오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가방에서 비닐 잠바를 꺼내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메인 헤드라이너는 블론디와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이었는데,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블론디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연주가 계속 어긋나고, 노래도 별로. 하지만 일종의 국민가수답게 영국 애들은 정말 좋아하더라. 모든 노래를 모든 사람이 다 따라 부르면서 다 블루스를 추는 게 참...그리고 “마리아”는 김아중이 더 잘 불렀다.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은 하도 나오지를 않아서 그냥 먼저 나와버렸다. 알고 보니 전성기 때부터 별명이 슬라이 “노 쇼” 스톤이라고 한다. 공연에 하도 지각과 취소를 많이 해서.

 이 날의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소말리아 출신의 랩퍼 케이난(K'nann : http://www.thedustyfoot.com/)이었다. 케이난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혼자서 랩과 슬램을 연습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UN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서 유명해졌다. 만델라인가 누군가가 감명을 받고 녹음을 주선해 주었다는 얘기도 있고.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힙합을 섞은 것 같은 음악을 하는데, 노래를 통해 소말리아에 대한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소말리아에는 6살만 되면 다 AK를 들고 다니고, 여기는 경찰도 없고 소방차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 내 친구들은 10살 때 탱크포에 죽었다. 이게 진정한 하드코어 갱스터 랩이 아닌가?”와 같은 센스 있는 가사들을 많이 썼다. 흑인 정치학, 흑인 예술이 거듭 호소하는 바는 결국 ‘날 것’의 진정성, “being real"이라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그런 면에서 힙합의 진정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셈이다. 지구상에 소말리아만큼 폭력과 가난이 참혹한 결과를 야기한 지역이 없을테니까. 다만 앨범이나 뮤직비디오에서는 마케팅을 위해서 이런 점들을 너무 과장하는 듯해서 불편했다.


 공연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충분했다. 공연은 봉고와 북을 중심으로 힙합 보다는 아프리카 음악처럼 구성되었다. 관객과 대화를 하면서 관객에게 특정한 경구를 외치게 하거나 박수를 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프리카 부족 의식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케이난과 밴드 맴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는 블랙 파워 사인을 취했다. 84년 생 정도로 나보다 훨씬 어린 것 같은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음악으로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이 얼굴에 보여서 마음이 찡했다. 결국 레게처럼 서양인들의 취미 이상이 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얘기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은, 참, 뭐랄까, 진지했다. “당신이 실제로 만난 소말리아 사람 1호”일 것이라는 농담도 그렇고.


 한국에 오기 전 마지막 날에는 템즈 강가를 누비면서 음악을 들었다. 템즈 강 남단에는 테이트 모던 현대 미술관이 있다. 거대한 화력 발전소를 개조해서 미술관을 만든, 정말 멋진 건축물이다. 건축의 노벨상 같은 것을 받았다고 하는데, 능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짝 거리는 강가에 커다란 전위적 건물이 서 있고, 그 앞에 도보 다리인 밀레니엄 브릿지가 있다. 하얀 다리를 따라서 걸어가면 강 북단에는 세인트 폴 성당의 돔이 점점 확대되면서 다가온다. 멀리 타워브릿지가 보이고...21세기와 19세기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이런 다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는 런던 최고의 풍경. 여기서 나는 릴리 알렌(Lily Allen)과 애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들었다. 발랄한 스카와 런던을 거짓말의 도시라고 부르는 냉소가 결합된 노래<LDN>. 라틴 억양으로 바람펴서 미안하지만 난 원래 그런 여자라고 느끼한 블루스를 부르는 <You Know I'm No Good>. 이 두 곡을 연달아 들으면서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았고, 결국 런던 생활은 끝이 났다.


 센치해지긴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왜일까?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 덧붙여서 지금까지 못했던 다른 얘기들도 좀 하고. 다음이 런던콜링의 마지막 글이다.


P.S.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에서 해리포터는 죽지 않는다. 엔딩은 어떤 비평가 말처럼 스타워즈를 충실히 따른다. 해리가 볼트모트를 무찌르고 영웅이 된다. 이 마지막 챕터는 정말 싫었지만, 그 직전까지는 너무 좋았다. 쿼디치, 마법, 호그와트 모두 다 잘라 내버리고 오로지 시련에 처한 해리의 고통만을 묘사하는데, 애들한테는 부담스럽겠지만 어른들이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점점 코너에 몰려가는 해리의 모습에 SM의 쾌감도 좀 느껴지고. 해리가 자신을 희생하는 성인용 버전을 따로 준비했으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쨌거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최고작이며, 영화 역시 대박을 낼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 문화의 핵심(by Kate Moss, 인류학자)

그 어떤 것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Do not take anything too seriously.)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반쯤 곁눈길로 흘겨보는 유머가 영국 문화의 핵심이란다.

 

나를 공식적으로 초청한 사람은 골드스미스의 Center for Cultural Studies 소장을 맡고 있는 John Hutnyk 교수이다. 이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사회인류학 전공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해서 영국에 이르기까지 지도 상 중간에 있는 10여개 국에서 연구를 하거나 가르친 적이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동유럽, 프랑스 등등.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사람이 특이하다. 일반적인 서양 사람, 백인들의 행동규범을 완전히 무시한다고나 할까.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별로 없고 적극적으로 친해지려는게 약간 한국 사람과 닮아있다. 어쨌거나 자기 분야의 공부는 매우 열심히 한다. 주 전공은 영국 내 인도-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문화. 이 사람들이 하는 방갈라-테크노 음악에 대한 책도 몇 권 썼다고 한다. 주요 관심사는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 문화연구, 대중음악연구, 인종문제 등이다. (연구실에 마르크스와 레닌을 좌악 쌓아놓은 급진주의자이다.)


내 연구주제를 듣더니 몇가지 포인트와 만날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 그 중 첫 번째로 걸려든 것이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전시회. Paula라는 자기 제자가 미술을 하는데 노예 제도 폐지(작년이 노예 제도 폐지 200주년이었다.)에 관한 전시회를 하고 있다고 한 번 구경하라고 한다. 잘 가지 않는 강 남쪽에 있는 Vauxhall이라는 동네에 가서 전시회를 보았다.


Paula는 스웨덴 사람으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퍼포먼스도 하고 설치도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노예 제도 폐지에 대하여 여러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상영하는 TV 설치물을 만들었다. 뭐 내용이야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사과는 하지 않았고 지금도 인종주의가 심각하다...이런 내용이었다. 사과를 통한 트라우마의 치유, 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뭐 새로운 얘기기는 했지만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John도 전시회를 보러 가서 회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엉겹결에 두 아저씨 아줌마를 따라 식당에 가서 밥도 먹게 되었네. 사실 나는 밥은 이미 먹은 상태라서 그냥 음료수만 마시고 있었지만...그냥 사교적인 대화를 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 존이라는 사람은 대단히 엉뚱하다. 대낮부터 맥주를 한 2병 마시더니 밥을 다 먹고 Paula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예술이란 뭐라고 생각하냐, 사실 런던에서는 예술이란 엔터테인먼트일 수 밖에 없다, 당신이 하는 얘기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지만 저게 뭘 바꿀 수 있냐, 뭐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한다. 다만 예술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질문들에 괄호치고 조금 거리를 두고 다가가는 것이다. 근데 존은 그냥 “까고 얘기해보자”라는 모드로 나가는 것이었다.


파울라는 계속해서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존은 자신이 가르치는 마르크스주의/문화연구도 문화산업이라는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여유’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정치적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한 1시간은 싸웠을까. 결국 서로 좋은 얘기다 다시 얘기해보자고 헤어졌지만, 중간에 앉아있기 상당히 뻘쭘했다. 


존과는 저녁에 골드스미스에서 열리는 다른 전시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가 근처에 있는 자기 집에 잠시 들러서 책을 가지고 가자고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발언이 나온다. 영국인은 금요일 오후 펍을 지나치지 않는다는. 중간에 있는 펍에 들러서 맥주를 한 잔 씩 마시면서 토크. 내가 당신 정말 백인 같지 않다고 하니까 백인들이랑 산적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필드워크도 동남아에서 하고 인도나 이런 곳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서양식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 왜 맑스주의자가 되었냐고 물어보니까 호주에서 대학다닐 때 중국인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란다. 70년대에는 호주 공산당이 상당히 알아줬다고.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호주 원주민들의 투쟁 이런 것들과 얽히고 하다 보니 계속해서 공부도 그런 쪽으로 나아갔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인종문제에 대해서 그는 매우 흥분하며  비판들을 쏟아냈다. 영국 사람들, 특히 런던은 이미 존재하는 인종주의를 부인하는 위선적 미소를 띄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난 그때는 그래도 런던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주장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주장이 옳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영국인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영국의 제도나 영국인의 심성은 좀 굼뜨고 깊고 레이어가 많다는 느낌이랄까. 위선도 겉으로는 웃고 뒤에서 찌르는 그런 위선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가령 멀티컬춰를 숭상하는 척하면서도 예전 대영제국의 역사를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던지, 인도 음식이나 영화, 음악은 좋아하면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은근히 적대적이라던지 등등. 좀 단순하게 표현된 면이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기 힘든데 왠지 갑갑한 그런 느낌이 항상 있다.(우연히 도서관에서 브릿팝을 ‘영국성’과 관련해 해석한 책을 봤다. 블러나 오아시스의 음악, 태도를 이 갑갑한 느낌을 찬양하면서도 싫어하는 그런 것으로 해석하더만.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존 때문에 술을 상당히 많이 마신 상태로 골드스미스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슈퍼에서 다시 맥주 6팩을 산다. 술 없이는 도저히 이런 졸업 전시 같은 사교 모임의 위선을 견딜 수 없다나~미디어 아트 석사 과정 졸업 전시였는데 자신이 한 클래스 가르친 적이 있기 때문에 꼭 가야한단다. 갔더니 역시나 뭔말인지 모르겠는 이상한 작품들이 잔뜩 있었다. 전시 기획 자체가 "미디어 아트를 통해서 비판 이론을 시각화 한다“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것이었다.(내가 주제가 뭔 뜻이냐고 존에게 물어봤더니 ”I have no idea"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생이 15명인가 있는데 한국인이 2명이었다. 역시 한국은 대단한 유학생 수출국. 한 사람이 데리다의 말라르메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이상의 시를 글자 단위로 분해해서 벽에다 상영하는 이상한 작품을 만들었다. 열나게 사람들한테 이상이 한국의 말라르메 같은 사람이고 자신의 시도는 시의 의미를 분해해서 시를 하나의 타이포그래피로 만드는 것이고 어쩌고...하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피곤했다. 1년에 1,2000파운드(약 2000만원이 좀 넘는다. 영국인들은 3000파운드를 낸다. 외국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이 없다.)를 내고 2년 해서 이런 걸 만들다니...한국 학생들과 얘기를 좀 했다. 다른 친구들도 좀 있었는데 인지과학 전공자랑 파인 아트(고전 미술이다. 회화나 조각 같은 것) 전공자도 있었다. 골드스미스에서는 이론적 전통이 강하다고 과학이나 미술을 해도 들뢰즈, 하이데거, 데리다 같은 것 다 읽힌다고 했다. 첫 학기에. 어떻게 하셨냐고 물어봤더니 만화책 등으로 다이제스트가 잘 나와 있어서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속으로 ‘그러니까 그런 작품이 나오지’라고 생각했다. 의미를 분해해서 타이포그래피로 만들려면 일단 의미가 통해야할 것 아냐. 근데 그 자리에 이상 시를 이루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밖에 아무도 없는데-_-그래도 서울대 디자인과 교수 한 사람이 구경왔었다고 희희낙락이다. 휴.)


그렇게 전시를 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오래 영어로 대화를 한 덕분인지 긴장이 풀리면서 버스 탈 때 다리를 접질렀다. 며칠동안 파스신세. 다리가 무지하게 아팠지만 오면서 등륵금을 내다버리지 않는 대학원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했다.


흔히들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은 ‘반 백수’같은 느낌을 받는다. 99% 정도는 이 느낌을 상당히 싫어한다. 일단 주변 사람들이 별로 높게 쳐주지 않고, 자기가 자신을 돌아봐도 뭔가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래는 지극히 불확실하고, 현재는 비올 때 차바퀴에 물 튀기는 것처럼 떨어지는 연구비에 달려있고, 하는 일은 남 심부름이니까. 게다가 연구랍시고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Les Back이라는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http://www.socresonline.org.uk/7/4/back.html)

첫 연구에 7년이 걸렸는데(서양에서 박사 7년 걸리면 우리나라에서 15년 걸린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할 때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마지막에 보니까 계속 알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더라고.(“Somehow I knew it all along."캬~) 이건 보통의 직업과 달라서 언제 아이디어가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를 하고, 쇼핑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애를 보거나 술을 마실 때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들을 잘 정리해야 하고. 도서관에서 박사논문 10개를 랜덤하게 뽑아오면 그 중에 우수한 것, 대단히 우수한 것, 그저 그런 것들이 섞여있을 것이다. 당신의 논문이 어디에 속할지는 알 수 없다. mediocre한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덤덤히 받아들여라. 공부는 커리어다. 다만 이력서에 채워가는 결과로서의 커리어가 아니라, 항상 움직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커리어다.


공부는 인격도야다 vs 커리어다의 균형 잡힌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완전히 합의된 것은 아니겠지만, 학문 전반에 깔려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절대 진리를 구한다기보다 경험과 실증을 중시하면서, 특히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괜찮은 서점에 가서 사회과학 섹션 앞에 서면 마음이 흐뭇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눈앞에 가득 쌓여있다. 우리나라처럼 실적을 내기 위해 만든 책은 적고, 학자 개개인이 발로 뛴 흔적이 많이 보여서 기분이 좋아진다. mediocre하다는 평가를 무릎 쓰고도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바친 흔적인 것이다.


이곳의 사회학 연구는 “inequality가 대세다”라는 표현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그 구성에 있어서는 매우 실용적이다. 하나의 방법론에 집착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화두를 설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응용한다. 소위 말하는 혼합 방법론(mixed methods). 실적을 중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 가령 논문 숫자가 중요하다고 하면 양적 방법론으로 하나의 사실을 빠르게 증명하는 게 유리하다. 그 사실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반대로 지적인 명성을 얻고 싶으면 오랜 시간을 들려 고도로 복잡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유리하다. 학계에서 소외되더라도 일정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거칠게 정리했지만 한국 지식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노선이다. 

전자의 경우 공부는 커리어이고, 후자의 경우는 인격도야이자 진리 추구이다. 전자는 양적 방법론을 채택하여 반증 불가능한 명제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한다. 이 명제는 학술지에 실리고 ‘실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 저명한 사회학자가 인정했듯이 이 논문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일단 엄청나게 책을 읽고, 엄청나게 어려운 얘기들을 소화한다. (일종의 훈고학 비슷한 건데 가령 맑스를 이해하고 싶으면 일단 헤겔과 고전 정치경제학을 이해해야지...근데 헤겔을 이해하려면 포이어바하와 니체도 알아야하고 그러려면 독일어도 공부해야겠네...근데 동시에 역사도 좀 알아야겠구나...와 같이 이어지는 ‘알아야하는 것들’의 연쇄. 이 노선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도 탈락한다.) 그리고 다시 엄청나게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 운이 좋으면 그는 ‘비판적 저술가’로 출판시장에서 일정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학계에서의 지위는 마이너 하지만 “나는 저들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물론 반대편에서는 “쟤들은 허접하다...내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은 80년대 덕분에 사회과학이 가장 널리 보급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대통령이 종속이론 책을 읽고 여당 대선후보가 밀스 책을 번역한 나라가 또 있을까-_-?)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공부한 사람을 존경하는 분위기도 있고 해서 지식과 지식인이 상당히 대접받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립 속에 반대로 강력한 냉소주의가 뭉게뭉게 자라났다. 말로 뭐라고 하는 애들은 다 거짓말, 위선이고 실제로 성과, 결과, 가시적이 것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일 잘하는 사람’ 이명박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축적되서 전반적으로 지식, 지식인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식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그걸 강하게 피부로 느끼는 것이고.


(좀 얘기가 새자면, 경향신문의 <지식인의 죽음> 기획은 “지식인”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이해하고 이러한 내적 역학에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그래서 임용절차나 학진 등에 대한 문제제기 같이 충실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철지난 푸념처럼 들린다.)


영국의 지적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풀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사회과학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사회과학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회에 봉사하는 입장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공동의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는 전통이 있고, 사회과학은 이 토론의 첨병에 서 있다. 따라서 실적을 쌓는 것, 과학적 진리를 찾는 것, 비판적 얘기를 하는 것 이전에 얼마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로비에 가면 이 학교는 Fabian Society가 “서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창립하였으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써있다. 바로 그런 느낌이다.(물론, LSE 출신 노벨상 수상자 사진 중에 하이예크가 있어서 좀 깨긴 했다만.)


따라서 사회학도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유행한다는 경제사회학, 문화사회학, 이런 것 없다. 다만 특화된 영역들이 있다. 도시(Urban), 범죄, 빈곤, 인종, 젠더, 교육, 의료 등등. 각각의 영역은 구체적인 정책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주택, 교육, 의료라는 복지정책의 3박자를 만들어 가는데 사회과학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처럼 루즈하게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같은 연구는 별로 없다.(유일한 예외가 기든스-_-;;) 모든 영역이 상당히 간학문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가령 범죄, 빈곤, 인종 문제를 엮어서 연구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또 방법론에 있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일단 간단하게 통계를 보여주고, 역사적인 논의를 한 다음, 에스노그라피를 한 챕터 넣고, 인터뷰를 곁들여서 마지막은 담론 분석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물론 연구자의 역량이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연구자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있지 방법론을 엄밀하게 적용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다. 따라서 논쟁이 활발하다.(방법론을 중시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방법론을 잘 몰라서 논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_-)


문화사회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이런 것은 없지만 문화연구가 있다. 문화연구는 독립적인 학제라기보다 많은 부분에 일종의 지침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불평등이나 인종 연구 등에 있어서는 과거 문화연구자들의 텍스트가 중요한 레퍼런스로 기능하고 있다. 경제사회학이나 네트워크는 거의 없다. 방법론으로 가끔 네트워크를 쓰긴 하지만 전체 그림 속에서 일부를 차지할 뿐, 아무 분야나 들어가서 그림 땡 그려놓고 끝내는 연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아직 읽지는 않아서 좀 부정확할 수 있다-_-) <The New East End:Kinshp, Race, and Conflict>라는 책이 있다. 원래 마이클 영이라는 사람이 60년대 이스트엔드의 가족 및 생활문화를 연구한 고전적인 책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영이 30년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같은 지역을 다시 연구한 것이다. 60년대 맥락에서 노동계급, 빈민의 가족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기틀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맥락에서 이스트엔드는 방글라데시 이민자 인구의 비율이 50%가 넘는 지역으로서 영국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섞어서(양/질/비교/담론분석) 과거의 현재의 이스트 엔드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영이 제3저자로 들어가 있다는 것. 이 사람이 원래 오리지널 연구를 한 만큼 연구 틀 설정이나 과정에서 도움을 준 부분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도 굳이 3저자로 들어가 있다. 일종의 ‘지킬 건 지킨다’인 셈. 뿌듯한 감동.


물론 캠브릿지-옥스포드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도 있다. 다만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에 대해서 아주 실용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공공의 지식인” 상을 유지하면서도 이것에 사르트르같이 영웅적인 색채를 부여하지 않고, 의사나 기술자같이 전문가로 대접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소한 것을 매우 좋아하는 기질이 강해서 사회학과 인류학의 경계에 있는 대중서적들이 매우 많이 팔린다.

요컨대 대학원생은 반백수라고 너무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회과학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급한 도구들을 생산해 내는 공장이다. 영국의 서점에 가면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냉소적인 공기에 너무나 쉽게 전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데도 말이다. 이제는 애써 위악적인, 타락하는 것 같은 제스춰를 취하는 유행도 지나간 것 같으니, 좀 더 스스로를 고고한 꽃처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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