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를 보고 사회학과 학생으로서 강렬한 희열을 맛보았다. 사회적 갈등구조. 물질적 기반과 이데올로기. 그 속에 놓인 개인들의 포지션과 행동. 거기서 발생하는 강렬한 파토스. 그래! 이런거야말로 진정한 열혈 소시올로지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친구들은 감정이 얕다거나 영화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불만을 토로했지만...원래 사회학은 이런 것이다.

@ 네이버



인종갈등은 한국에서 쉽게 느끼기는 힘든 소재이긴 하다. 그러나 약간의 상상력만 있다면,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야하는데, 그 속에 충돌의 불씨가 있다는게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돈 많은 사람이건 경찰이건 범죄자건 돈 없는 이민자건 그들은 서로에게 의존한다. 인종에 따른 노동의 분업. 게다가 영어가 중간에 걸려든다. 커뮤니케이션 부재. 거기다 상이한 문화적 전통과 갈등의 역사적 경험이 추가된다.

따라서 그들은 계속 부딪힌다. 부딪힐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아버지는 흑인들에게 직업을 주었고, 우리 어머니는 백인들 대문에 고생했고...너희들은 테러를 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이고 등등등. 이러한 화약고에 총기와 경찰폭력이 불씨로 들어가서 비극을 만들어낸다.

8개의 선이 맞물리는 시나리오는 훌륭하다. 슬픔이나 기쁨, 혹은 부모에 대한 느낌 같은 감정과 문이 쾅 닫히거나 차가 달리거나 하는 사건의 유사성을 통해서 씬을 연결하는 기술이 훌륭하다. <뮌헨>에서도 보여진 바 있는, 미국 영화가 능한 대중적인 접근법. 이런 기법들을 통해서 스토리는 LA의 도로망처럼 구불구불 얽혀든다.(LA의 도로망을 형식적으로 구현한 영화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우선 <숏컷>. 그리고 경찰영화들. <LA컨피덴셜>?...)

@ 네이버




결정적인 감동은 역시 사람이 준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은, 시나리오의 농간에 의하여, 역설적인 조건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자신을 추행한 경찰이 자기 목숨을 구해준다거나. 한 흑인의 생명을 구한 백인 젊은이가 실수로 다른 흑인 젊은이를 죽이게 된다거나. 자신의 긍지를 팔아 동생을 무죄로 만들어 놓았더니 그가 시체로 돌아오고, 가족애가 넘치는 가장이 다른 집 어어린 딸을 총으로 쏘고...여기서 사람들이 취하는 엉거주춤한 포즈에 주목.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쩔 줄 몰라하는 그 표정이 감동의 원천이다. 사회구조와 개인의 삶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이 날카롭게 스크린에 새겨져있다. <어쩔 수 없다>라거나 <어쩔 수 있다>라고 딱잘라 말하기 난감하다. 나는 그 부분에서 날것 그대로 <사회>라는 것이 도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이 소위 <인종문제>이구나. 이런 것이 <사회>이구나.(써놓고보니 여기서 희열을 느끼는 나는 사회학적 변태라는 생각이 좀 드는군-_-)

하여튼 결론은 이런 페이퍼를 써야 한다고오오오오오....

@ 네이버 : 돈 치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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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면 형의 지적 세계를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거군, 그렇지? :)

    2006/04/08 09:06
  2. sunsh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보다 쉽게 감동하는 나의 미국식 감성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06/04/08 10:44
  3. 수시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게 감동'하는 것이 왜 미국식 감성세계일까?

    2006/04/09 16:27
  4. 선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무게가 없어 쉽게 쓸려간다고 상상해본다.

    2006/04/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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