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제목 때문에 조금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책 내용은 질적비교분석(Qualitative Comparative Analysis)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하지만 전반부의 변수중심 접근법(variable-oriented approach)와 케이스 중심 접근법(case-oriented approach)를 대비시키고 있는 부분은 사회과학 방법론 일반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꼭 읽어볼만하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인 QCA나 Fuzzy Set QCA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 연구의 방법론은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이 있다고 설명한다. 양적 방법론은 통계를 중심으로한, 수리적인 방법론인 반면 질적 방법론은 인터뷰와 에스노그라피 등을 동원하는 해석적인 방법론으로 간주된다. 원론적으로는 두 방법론이 상호보충적인 역할을 해야하지만, 사실 이 두 방법론의 대립은 사회과학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양적 방법론은 딱 떨어지는 모델링과 일반화가 용이한, 좀 더 과학적인 방법론이라고 간주되는 반면, 질적 방법론은 재미있고 풍부하나 정합성이 떨어지는, 일종의 저널리즘에 가깝다고 간주된다. 한쪽을 선택한 이들이 다른 쪽에 대하여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허나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론에 대한 회의나 성찰도 거의 없어보인다. 이것은 "수입된 사회과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바나나를 재배하는 이들은 바나나의 맛을 심각하게 따지겠지만, 바나나를 수입하는 이들에게 바나나는 바나나일 뿐이다. 맛을 따져가며 품종개량을 도모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제 논의에 밀려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이 책은 미국의 맥락에서 이긴 하지만 유용한 반성들을 제공한다. 20세기 동안 미국에서 발전해온 양적 방법론, 혹은 서베이 자료를 중심으로 변수와 변수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변수중심적 접근방법은 심각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회생활의 풍부한 의미망들을 탈각시키고, 종종 자기순환적인 결과를 내놓으면서, 변수와 변수 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조건들을 사유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은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그 대안인 질적 방법론이 체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적 방법론은 연구자의 직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일반화가 불가능한, 선택된 천재들만이 실현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여겨져왔다.
저자는 QCA-FSQCA가 양자를 매개하는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CA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0년대 이후 활발해진 비교사회학-비교정치학의 기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에서는 스카치폴, 틸리, 웰러스틴과 같은 이들의 작업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계량과 기능주의에 맞서 거시구조를 다룰 수 있는 기법들을 창안해냈다. 이른바 "역사사회학"이라고 불리는 이 접근은 개별 국가들, 혹은 사회들 속에 내재한 사회 구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는 방식으로 역사학과 자신을 구별지으면서, 사회를 총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였다. 어떻게보면 이러한 접근은 60년대산 급진주의가 보수적 사회학과 선을 그으면서 학계에 자신을 납득시켜 나간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한 납득을 위해서 이들은 일정한 의미에서 동시대성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역사적 자료를 통해 동시대에 개입하는 방법은 유효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계량적 연구가 가지는 설득력에 비하면 이러한 연구들은 약간은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QCA는 이러한 비교 방법론을 좀 더 체계화시킨 것이다. 단순히 2차 자료들의 집산을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QCA는 논리식을 통해서 비교 과정을 체계화시켰다. 특정한 사회현상의 발생은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의 교차를 통해 표현된다. 예를 들어 사회혁명이 가능한 조건은 부르주아 층이 부재하고, 국가 기구가 붕괴하며, 대중의 경제적 생활기반이 광범위하게 파괴된 필요조건 속에서, 혁명운동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도자 그룹이 유리한 국제 정세를 마주하는(충분조건)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약점이 "Small 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변되는 일반화 가능성의 부재였다면, Ragin은 이미 20-30개의 케이스에서 이러한 논리식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를 돌파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대단한 점은 그가 이러한 주장을 사회과학은 과도한 일반화를 지양해야 한다는 이론적 명제로 밀고갔다는 점과, 직접 이러한 분석을 가능케하는 프로그램까지 개발해냈다는 데 있다.
어쨌건, 퍼지셋 접근 방법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퍼지셋은 기본적으로 원소의 포함여부가 확률적으로 묘사되는 집합이다. 즉, 특정한 집합에 원소가 속하는 경우가 몇 %, 그렇지 않은 경우가 몇 %정도로 서술된다. 사회과학과 관련해 이 개념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것이 "이념형"이라는 개념을 충실히 반영하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완전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특정한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얼마만큼 민주주의적인지는 묘사할 수 있다. 또 문화적 범주와 관련해서 남성, 흑인, 강남 사람과 같은 사람의 전형을 정확하게 지목할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XXX는 몇 % 강남 사람이며 몇 % 강북 사람이다, 와 같이 묘사할 수 있다. 요컨대 계량 분석-변수 중심적 회귀분석, 범주형 자료분석 모두-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 좀 더 복잡하게 현실과 개념들을 매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을 토대로 위에서 언급한 QCA를 실시하면 훨씬 더 정밀해진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즉, "특정한 정도 이상의 경제 발전은 특정한 정도 이상의 민주주의를 촉진시킬 확률이 크고, 여기에 강력한 지도자와 같은 변수가 개입한다면 확률은 더욱 상승한다." 정도의 명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Ragin은 이러한 접근을 변수 중심적 접근과 케이스 중심적 접근을 조화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방법론은 지나치게 국가와 같은 거대 단위를 의식한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따라서 거시 수준의 분석에만 적합하다는 인상도 준다. 특히 N을 20-30 정도로 제한해야한다는 사항이 좀 치명적이다. 즉, 일반화된 명제를 만들기는 아쉽고 필드 워크에 들고 나가기에는 차라리 모든 케이스를 서술해 버리는 편이 더 안정적인 방법이 되는 것이다.
어쨌건 이러한 접근이 비교역사적 접근을 좀 더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요즘 활발한 초국가적인 역사서술과 논리식을 통한 접근이 겸비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의 절합을 좀 더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사회과학 방법론에 있어서 논쟁의 핵심은 보편성-특수성, 변수중심 모델링-케이스 중심 서술, 계량-질적 연구, 설문자료-역사자료/인터뷰, 이론-묘사 등으로 같은 내용의 대립을 반복해 온 측면이 있다. 두 가지의 절합이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면 이론적 진전은 물론이고, 사회과학에서 결과물의 평가와 특권prestige의 분배 절차 역시 변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작업들은 환영할만하고 이 위에 더욱 진전된 토론들을 배치할만 하다.

다음 : 사회적 자본 개념을 극복하는 몇가지 방식들 - Jason Kaufman, For the Common Good? + 김상준 "부르디외, 콜만,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 개념 비판" + Ben Fine, Social Capital vs Soci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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