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6/07/19 정성일 on 아파트
  2. 2006/04/24 생각의 전환
  3. 2006/04/06 레디앙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폭력이고, 나가지 않으려는 것은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것이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둘은 하나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악순환이다. (내 생각에) 비밀은 여기에 있다.

▲ 철거된 청계천 삼일아파트 ⓒ연합뉴스
아파트는 존재론적인 일관성을 상실했을 때에만 비로소 순환으로서 성립된다. 들어오려는 것과 나가는 것 사이의 불일치. 폭력과 공포. 폭력이 끝날 때 공포가 시작되고, 공포를 떨칠 때 폭력이 시작된다.

그때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환상을 끝내기만 하면, 욕망을 멈추기만 하면, 아파트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건 (이미 아파트에 안전하게 살고계신 교수님들의) 기만이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부지불식간에 진실을 이야기한다. 환상을 멈출 때에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때, 환상을 끝낼 수 있을 때, 욕망을 멈추려면, 더 이상 주거의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건 물론 내가 죽는 것이다. 그때 폐기되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말하자면 산다는 문제. 내가 발을 뻗고 잠들 수 있는 작은 방. 내가 힘겹게 모은 책과 음반, DVD들을 쌓아놓을 수 있는 집. 그건 내가 소망하는 유일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사실상 저 가공할만한 집값 앞에서 그저 바람결에 간단하게 날아가 버릴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집을 가진 자들에게 증오심을 매일 키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작은 집에서 매년 전세 값에 전전긍긍하면서 그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매년 두려움에 하여튼 버티고 있다. 폭력적인 전복에의 유혹과 공포에 차서 일 년에 한 번씩 내게 찾아오는 계약일. 그 사이의 줄타기. 우리 일부의 삶. 그런데 너무 많은 일부.




-- 정성일 "폭력 공포 영화 속에 감춰진 '부동산' 담론" (레디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14

...나는 내가 기억하는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자취방 빼고.
정성일은 그가 하는 말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는 못하고, 일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삐꾸-_-가 나지 않고 글을 써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없단다.

생각의 전환

분류없음 2006/04/24 03:51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669


과문한 탓인지라^^, 내가 알기로는 이진경씨가 실제적인 이슈에 대해 글을 쓰는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뭔가가 있다면, 전적으로 게으른, 그리고 한참 공백이 있었던 내 탓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 시작해서 <맑스주의와 근대성>, <노마디즘>에 이르는 책들을 모두 읽었지만 그를 전적으로 좋아하기는 힘들었다. 간단히 얘기해서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인감?>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보통 나 이진경 좋아해~책도 읽었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가 이렇지 않을까. 돌아오는 따가운 시선...)

허나 이 글을 보고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공부를 해서 뭐하나~에서 공부를 많이 하면 정말 남들이 잘 못하는 것도 할 수 있게 되는구나 식으로...

이 글은 훌륭하다. 일단 쉬운 글이고, 소스도 분명하다. 몇 가지 개념틀(네그리, 일반적인 제국주의 비판, 소수자 관련 담론, 아감벤...)과 분명한 소스들(신문에 다 있는 지수들이다...나만 알고 있다는 류의 인사이드 정보나 복잡한 통계기법은 없다.) 그리고 선명한 문체. 게다가 개성공단 얘기나 민족주의 비판 등도 약간 소설같은 느낌이 있지만 색다르고 좋은 쟁점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조합을 통해서 이런걸 만들어 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아메리카니즘>이라는 얘기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많이 비슷했다. 일종의 사회 문화적인 압력으로서 미국화, 미국식 사회, 생활양식으로의 재편...영어 열풍...소비 문화...

비판점이 있다면 좀 낙관적이라는 것인데. 1) FTA 반대가 중산층의 동요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나?(중산층 동요, 는 일종의 혁명의 공식처럼 사용되는데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2) 미국의 압력과 국내정치적 변수에 둘러싸인 정부에 강행 이외의 선택지가 있나? 3) 미국 경제가 전쟁을 통해서 계속 자기증식하는 돌연변이 자본주의로 최소 중기적으로(한 20년?) 유지될 가능성은 없나?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P.S. <철학과 굴뚝청소부>(구판만 읽었다)는 좋은 책이다. 다만 철학에 진지하게 입문하기는 좋지 않다. 근대철학의 계보를 너무 한쪽 방향으로 화살표 쳐놓고 정리하는 느낌이랄까. 대부분 이진경씨의 저서들이 그런 느낌이 있다. <맑스주의와 근대성>도 맑스주의에서 주체생산양식의 문제설정을 통해 탈근대적 맑스주의로 넘어간다, 는 수학 공식 같은 느낌이고. <노마디즘>은 성실한 해설서이지만 읽다보면 좀 갑갑해서 원서로 돌아가서 내멋대로 헤메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요컨데 독자를 일정 수준으로 상승시키지만 딛고 점프할 발판이 되어주지는 않는다는 점. 입시문제집 같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인가? 어쨌든 그건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레디앙

클립들 2006/04/06 06:03

최근 레디앙을 열심히 읽고 있다.(www.redian.org)
프레시안이 너무 디테일이나 음모론에 치중하는 면이 있는데
레디앙은 그것보다는 좀 더 뜨겁다.
뜨겁다라는 건 사회적 적대의 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거?
그냥 관념적으로 자본과 신자유주의 미국은 다 싫어~이런게 아니라
한미FTA 정책결정과정에서 어떤 라인이 움직였고 어느 파트가 문제고
이런게 좋다. 타격지점이 명확히 보이거든.
포괄적으로 가진자들이 문제다 이런게 아니라
삼성과 재경부 관료들이 문제다, 이런 포인트가 좋다.
"노동운동 쓰나미 온다" 이런 어찌보면 해괴한 이런 헤드를 어디서 뽑겠는가.
한동안 사회라는 것은 감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프레시안과 레디안을 읽고 있으면 그런 감각이 느껴져서 좋다.
내가 사는 매일매일과 다른 이런 매일매일도 있고
또 그게 (머리로 생각해서이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와 관련이 있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
오랫동안 피해왔던 어휘인 <고민>을 요구한다고나 할까.
이런 매체들은 실제로 독자수는 많지 않지만 정보가 내실있다.
아무래도 정보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이 보고 영향력이 크기에 비해 크다.
기왕 신문사에 취직할거면 이런 곳에 취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거대언론사 신문들이 더 <객관성>을 화끈하게 버려주시고...
오히려 프레시안이나 TV 뉴스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형편이다.
문화면 강화, 이런게 둘 다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건 나도 좀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프레시안 무비>는 대단해. 삽질중인 씨네21을 능가하려는 기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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