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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거된 청계천 삼일아파트 ⓒ연합뉴스 | ||
그때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환상을 끝내기만 하면, 욕망을 멈추기만 하면, 아파트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건 (이미 아파트에 안전하게 살고계신 교수님들의) 기만이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부지불식간에 진실을 이야기한다. 환상을 멈출 때에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때, 환상을 끝낼 수 있을 때, 욕망을 멈추려면, 더 이상 주거의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건 물론 내가 죽는 것이다. 그때 폐기되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말하자면 산다는 문제. 내가 발을 뻗고 잠들 수 있는 작은 방. 내가 힘겹게 모은 책과 음반, DVD들을 쌓아놓을 수 있는 집. 그건 내가 소망하는 유일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사실상 저 가공할만한 집값 앞에서 그저 바람결에 간단하게 날아가 버릴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집을 가진 자들에게 증오심을 매일 키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작은 집에서 매년 전세 값에 전전긍긍하면서 그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매년 두려움에 하여튼 버티고 있다. 폭력적인 전복에의 유혹과 공포에 차서 일 년에 한 번씩 내게 찾아오는 계약일. 그 사이의 줄타기. 우리 일부의 삶. 그런데 너무 많은 일부.
-- 정성일 "폭력 공포 영화 속에 감춰진 '부동산' 담론" (레디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14
...나는 내가 기억하는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자취방 빼고.
정성일은 그가 하는 말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는 못하고, 일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삐꾸-_-가 나지 않고 글을 써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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