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6/09/17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
  2. 2006/09/06 기록영상으로 보는 근대의 풍경 1899-1941
  3. 2006/08/28 김기덕의 <시간>
  4. 2006/08/02 괴물
  5. 2006/07/19 정성일 on 아파트
  6. 2006/07/17 <한반도>를 보시었다 (2)
  7. 2006/05/04 사생결단
  8. 2006/03/27 천상의 피조물, 파멸을 부르는 판타지의 아름다움 (2)
  9. 2006/03/21 생각이 나다

이나영에 대해서 실망하고, 강동원의 괴물 같은 연기에 반하다. 강동원이 나의 모국어인 경상도 사투리를 해서 그런지,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정말 무기력하고 약한 한마리 짐승 같은 모습에, 펑펑 울었다...극장을 가득채운 여자들 중 누구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아서 손등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마지막 사형 집행 장면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마지막 말을 하는데, 저 사람이 얼마나 오랬동안 밤에 잠 못 이루면서 저 말들을 준비했고 저 순간을 두려워해 왔을까가 느껴지더라. 끝이 없는 구멍 같은 고독과 절망의 깊이를, 상상이나마, 들여다본 것 같았다. 슈진이가 손을 잡아주어서 간신히 안심이었다.

영화자체는 플래시백을 자르고 만남의 방 장면을 늘렸어야 했다.  

기록영상으로 보는 근대의 풍경 1899-1941





한국영상자료원은 근·현대사를 시각적으로 증언하는 다양한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영화관에서 감상하실 수 있는 수많은 영화들이 그 자체로 근·현대사에 대한 중요한 기록임을 의심할 바 없지만, 이번 9월에 개최될 기획전에서는 그간 고전영화관에서 감상하시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들을 모아봤습니다. 1899년 한국을 여행했던 미국인 버튼 홈스(E. Burton Holmes)가 촬영한 <한국-KOREA>를 필두로, 1910년경부터 1940년까지 제작된 기록영상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맷돌로 옥수수를 빻고, 신발의 가죽을 꿰매는 1910년경의 민초들을 볼 수 있는 <한국(고요한 아침의 나라)>, 1920년대 부산과 서울의 거리풍경을 엿볼 수 있는 <한국의 주요 마을들>(1923년경), 교향악을 배경으로 1940년 서울 거리의 여러 모습들을 미려하게 살피는 도시교향악 <경성>(1940) 등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담은 기록영상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9월 13일 저녁에는 전우용 교수(서울대학교병원 병원사연구실)의 해설을 통해 영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설시사회-기록영화로 본 근대서울’이 진행되며, 다음날인 14일 저녁에는 기록영상과 식민지 일상사 연구를 주제로, 정근식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임옥희 대표(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발제 및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토론으로 진행될 학술시사회가 개최됩니다.



15일까지 계속될 기획전 기간 동안 14편의 한국 관련 기록영상과 2편의 외국영상((뤼미에르 형제, 1895년경), <제목미상(부제: 일본실록)>(1941년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섹션1
<한국-KOREA>(버튼 홈스, 1899), 5분12초

<한국(고요한 아침의 나라)>(감독미상, 1910년경), 4분

<제목미상>(감독미상, 1920-30년대), 12분

<조선의 축산업>(감독미상, 1920년대), 7분

<조선소식(부제: 조선시보 제11호)>(감독미상, 1920년대), 9분

<한국의 주요 마을들>(감독미상, 1923년경), 2분

(감독미상, 1924년), 3분

<만주에서의 전투>(감독미상, 1931년), 2분

<순종황제 인산습의>(감독미상, 연도미상), 7분

(뤼미에르 형제, 1895년경), 5분14초

총 56분26초  

재미있지 않겠는가! 목요일의 학술시사회. 좀 다른 이유도 있긴하지만서도...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풍부한 의미가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그 흘러나오는 모양새가 마치 살에서 피가 흘러나오듯이 진득하고 끈적해서 좀 찝찝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이미지의 힘을 가지고 가는 모양새가 대단하다. 주연인 하정우가 "김기덕은 한국의 셰익스피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과연 이 시나리오는 셰익스피어를 닮은 데가 있다. 불가능한 욕망. 분출하는 파토스. 카페를 중심으로 짜이는 공간-시간 구조. 중요한 대목 마다 끼어드는 연극적인 연출...이걸 장르적인 시각에서 로멘틱코미디+호러다라고 읽을 수도 있고, "얼굴성" 및 "표면"/"본질"을 통해 들뢰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욕망의 대상과 오인, 시공간의 구성을 따라 라깡-지젝 식으로 독해할 수도 있다. 웃기면서 슬픈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시간의 불가역성을 음미하며" 성현아가 손바닥 조각상에 감싸여서 눈물 흘리는 마지막 화면을 감동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아이러니였다. (대부분의 요즘 작가주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영화도 엇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뜩한 이미지로 관객을 긴장시키고 감정을 모은 다음, 그것을 분출시키지 않고 아이러니를 통해 흐지부지 만든다. 현대 미국 소설 같은 느낌으로, 나선형을 만든다고나 할까?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만한 세희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장면 또한 그렇다. 가면을 쓴 세희는 원하던 세희가 돌아왔으니 행복하냐고 묻는다.(대충 그렇다.) 너 미친거 아니냐고 절규하는 지우에게 옆 테이블의 남자가 시비를 건다. "가면 쓰고 이게 지금 무슨 연극이야 뭐야!" 시비가 붙은 지우와 남자는 밖으로 나가고, 창밖에서 지우는 한참 맞는다. 엇박자로 전개되는 아이러니, 클라이막스. 카페가 일종의 자아-환상공간이라는 점, 직접적인 충격을 통해 실재와 맞대면한다는 점, 감정의 분출과 아이러니가 엇박으로 나아간다는 점; 이 세가지를 통해 이 장면은 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우와 세희와 새희라는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한테는 (좀 단순하긴 하지만) 간단하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보고 나서 할 말이 많으면 좋은 영화, 없으면 나쁜 영화다. 아주 나쁜 영화도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충 괜찮은 영화가 된다. 보고나서 욕을 하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다세포소녀>는 보통을 뛰어넘는 좋은 영화였다-_-) 보고 나서 술 생각이 나게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좋은 영화다. 사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대단한 메시지나 예술적 감성고취를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밥 먹고 헤어지기 뻘줌하고, 모였는데 할일은 없고, 혹은 소개팅은 했는데 상대는 맘에 안들고 등등의 상황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아닌가? (<미션 임파서블3>가 그런 역할을 하는지 혹은 <괴물>이나 <시간>이 그런 역할을 하는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쨌거나 내가 간 극장에서는 <시간>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사람들은 더욱 활발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아주 제한적인) 증거다.

괴물

분류없음 2006/08/02 04:51

@ 네이버 : 마스크만 쓰면 딱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인데, 나는 <괴물>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박해일이 화염병 던지는 모습을 정면에서 살짝 슬로우로 잡는 그 장면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생애 최초로 화염병 던지는 게 멋있는 거고, 뭔가 의미가 있는 거고, 절박한 거고, 그리고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어릴 수록 이 느낌은 더할 터. 양궁은 엘레강스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이지만 화염병은 너무 리얼해서 오히려 초(超)현실적인 느낌.

사람의 정치적인 취향이 결정되는 데는 대략 세가지 정도의 변수가 큰 역할을 한다. 자신의 직접적인 상황...은 원재료 같은 성격이 강하다. 그것은 특정한 필터를 통해 가공된다. 세가지라 함은 1)가족, 2)대중문화 그리고 3)사회 초입의 경험이 될 것이다. 1번은 계급과도 연관있는거니 당연한 거고 2번과 같은 경우 무엇이 쿨하고 무엇이 쿨하지 않고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일례로 지금까지 시위는 찌질한 것이었지만 <괴물> 덕분에 화염병은 쿨한 것이 되었다. 3번 같은 경우는 대학생의 경우는 1학년, 대학생이 아니라면 첫 직장 정도가 되겠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프레셔를 받는가가 그 사람의 정치적 사상의 행보를 크게 결정한다.

물론 사람의 정치성향은 변한다. 자민련 지지에서 민노당 지지로 돌아선 소상인이 있듯이. 그러나 대한민국 선거 결과들을 보며 정치성향이 크게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폭력이고, 나가지 않으려는 것은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것이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둘은 하나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악순환이다. (내 생각에) 비밀은 여기에 있다.

▲ 철거된 청계천 삼일아파트 ⓒ연합뉴스
아파트는 존재론적인 일관성을 상실했을 때에만 비로소 순환으로서 성립된다. 들어오려는 것과 나가는 것 사이의 불일치. 폭력과 공포. 폭력이 끝날 때 공포가 시작되고, 공포를 떨칠 때 폭력이 시작된다.

그때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환상을 끝내기만 하면, 욕망을 멈추기만 하면, 아파트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건 (이미 아파트에 안전하게 살고계신 교수님들의) 기만이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부지불식간에 진실을 이야기한다. 환상을 멈출 때에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때, 환상을 끝낼 수 있을 때, 욕망을 멈추려면, 더 이상 주거의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건 물론 내가 죽는 것이다. 그때 폐기되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말하자면 산다는 문제. 내가 발을 뻗고 잠들 수 있는 작은 방. 내가 힘겹게 모은 책과 음반, DVD들을 쌓아놓을 수 있는 집. 그건 내가 소망하는 유일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사실상 저 가공할만한 집값 앞에서 그저 바람결에 간단하게 날아가 버릴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집을 가진 자들에게 증오심을 매일 키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작은 집에서 매년 전세 값에 전전긍긍하면서 그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매년 두려움에 하여튼 버티고 있다. 폭력적인 전복에의 유혹과 공포에 차서 일 년에 한 번씩 내게 찾아오는 계약일. 그 사이의 줄타기. 우리 일부의 삶. 그런데 너무 많은 일부.




-- 정성일 "폭력 공포 영화 속에 감춰진 '부동산' 담론" (레디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14

...나는 내가 기억하는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자취방 빼고.
정성일은 그가 하는 말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는 못하고, 일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삐꾸-_-가 나지 않고 글을 써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없단다.

웃길 줄 알고 보았는데 그렇게 웃기지는 않더라. 문성근의 친일파-현실주의자 연기가 좋았기 때문에 그럴 듯 했다...그러나 조재현은 아줌마들에게 반말하면서 역시 자신이 나쁜 남자임을 증명하였다. 독고영재는 자기가 박정희의 화신임을 또 강조했고...("막을 수 있겠는가?""막아야 한다면, 막겠습니다!"...하면 된다는 얘기인데...실제로 하면 된다고 할 때 되게 만드는 사람들은 대략 안습하게 된다...) 일본 사람 역을 맡은 사람들은 참 야비하게 생긴 사람들을 잘도 찾아내었다. 대단한건 2시간 반 정도 되는 영화를 만들면서 여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는 것이다. 야오이물도 아닌데 정말 대단해.(국모를 여성으로 보아야하는 지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사람들은 좋아하더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영화가 말하지 않은 것, 일종의 아포리아는 미국인 것 같다. 그래서 주한미군 핫라인은 중요할 때 불통이다. 한국을 규정하는 가장 큰 영향력은 미국인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좀 다르다. 크기도 비슷하고, 정식 군대로 승격도 못한 자위대를 갖고 있고, 게다가 패전국, 전쟁범죄자 국가이기도 하니...대한민국 해군이 해상자위대 30% 전력이긴 해도 외곬수 사학자+멋진 대통령+애국심과 진짜 국새를 더하면 얼추 해볼만 한 것이다.(진짜 국새는 왠지 온라인 게임의 막강 특수 아이템을 연상시킨다...현질로 사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미국한테 하고 싶은데 못했던 얘기를 일본한테 하는 거다. 기분은 좀 풀리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면 당장에 CIA가 정권교체 들어올텐데...어쨌거나. 미국 사람들은 매사에 철저하기 때문에 가짜 국새같은 것을 남겨놓지 않는다. 법적으로 따지고 들면 절대 이길 수 없게 모든 환경(그 사람들말로는 "circumstances")을 통제해 놓는다.

정말 망하길 기다리는 것 밖에 방법은 없는가. 나이가 들수록 안 어울리게 반미주의자가 된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영어수업에 들어가야할 이유가 또 늘었다.
   

 

사생결단

분류없음 2006/05/04 09:00




@ 네이버


최근 본 한국영화 중에 가장 강렬했던 영화. 남성성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뭐 그럭저럭 삶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경상도 사람으로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부산의 정서. 단순히 사투리가 아니라 부산 <싸나이>들의 인격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류승범과 황정민 대단하다...돈 많이 받을 가치가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니까.

수업시간에 문화적인 남성성에 대해서 배우면서, 남성성은 무엇보다 자본주의나 경쟁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사생결단>이 잘 보여주듯이 남성성의 핵심은 물고 물리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 비정한 경쟁이거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여성에 대한 이중의 착취를 매개로 연결된다는 주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처우개선 등과 함께 중대한 반론에 직면한다. 대신 폭력적/경쟁적으로 형성된 남성성을 매개로 두 가지가 연결된다면 어떨까. 맑스주의가 <노동>에서 착취의 구조적 메커니즘으로서 <자본>으로 분석의 초점을 옮겨왔듯이, 페미니즘의 영역에서도 <여성 주체>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핵심 기제로서 <남성성>을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남성성에 대한 담론은 <나 힘들어서 못살겠어> 류의 어리광과 <제대로 살고 싶은데 잘 안 되네. 부끄럽네>류의 소심한 반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맑스의 말을 빌려, 중요한 것은 남성성이 구성되는 조건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네이버


정반대의 포인트에서, (S양의 지적처럼) 이 영화가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은 유치하다. 추자현의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고(추자현 팬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필요가 있었나...) 황정민 애인과 그 애인 아이 같은 캐릭터들은 정말 클리셰에 불과하다.

호쾌하면서 섬세하기까지 하기는, 참 힘든 것인가 보다. 그러나 환락가로 비추어진 부산 풍경, 매우 좋다. 지방 나이트에 흐르는 그 질척질척한 분위기. 지저분한 부두, 바닷가의 거친 바람, 언덕이 많은 도시의 황량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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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의 손에서 나온 가장 특이한 영화 <천상의 피조물>. 친애하는 민수는 몇 년전 부천영화제 피터 잭슨 특별전에서 <데드 얼라이브>와 <천상의 피조물>을 연달아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같은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있지?

두 영화는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천상의 피조물> 첫 장면인 추적 시퀀스는 <데드 얼라이브>와 유사하다. 무언가에 계속 쫓기는 주인공들. 피가 묻은 손과 얼굴. 파국("엄마가 죽었어요")에 대한 도움의 호소("좀 도와주세요"). 물론 그 다음 오프닝 크레디트는 뉴질랜드 여학교의 고풍스러운 성가 합창이다. 숭고와 비장미.

ⓒ 네이버

<천상의 피조물>은 구조가 묘하게 짜여져있다. 자신들의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는 두 10대 소녀가 주인공인데, 영화의 시각은 그들의 시각과 일치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일치하지만 그들이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닐 때는 감정이입을 차단한다. 폴린의 목소리로 계속 나오는 보이스오버는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 선을 넘어 광기와 유치찬란함을 노출한다. (내가 10대 소녀였던 적이 없고 앞으로 될 일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난 이 10대들의 판타지에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는 감상의 포인트는 이 강렬한 판타지가 머리 속과 일기장을 넘어 현실로 들어오는 모양에 있다. 판타지가 강해질수록 과대망상이 커지고, 과대망상은 사회적 질서와 충돌한다. 판타지의 아름다움이 강해질 수록 이 충돌의 파장도 커진다. 그러다가 쾅! 판타지가 현실의 경계로 넘어올 때 비극이 일어나고, 사랑과 소통이라는 가장 큰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는 판타지 오타쿠 피터 잭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한다면, 이들과 사랑에 빠진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주변의 현실은 파국을 맞이하겠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해서라도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 네이버

  <천상의 피조물> 도입부 2개의 장면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두 가지 선을 압축한 것이다. 파멸을 불러오는 판타지와 그렇게해서 발생하는 숭고(Sublime).  조직된 사회 질서, 확립된 윤리와 미적 판단의 마지막 경계선을 넘어갈 때 드러나는, 죽음충동과 연결된 감정으로서 숭고.

천사가 있다면, 천국의 생물들이 있다면 그것은 파멸과 아름다움이 결합한 기괴한 형태를 띌 것이다. 고어와 괴물들의 아빠 잭슨은 어쩌면 천상의 피조물들의 아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수호자일지도...

생각이 나다

분류없음 2006/03/21 17:03
http://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60320144636&s_menu=movie

를 보고 생각이났다. 글 자체는 <농밀>하다는 말 빼고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하나라도 사람들이 다른 곳에 가서 읊을 수 있는 단어가 있으면 잘 쓴 평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술 먹고 늦게 일어난,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봐야 제맛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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